한 달, 그 짧고도 긴 시간 나도 이번 생에 정직원으로 첫 월급을 받게 되었다. 아직 블루카드(외노자자격증)가 나오지 않아 은행을 개설할 수 없어 돈을 현금으로 받았다. 사원증을 보여주고 회사 로고가 그려진 흰색깔 봉투를 건네받았다. 손에 두툼하게 잡히는 느낌이 짜릿하다. 드라마 속의 한 장면처럼 화장실 한 구석탱이에서 봉투를 열어본다. 황금색 사자가 어흥하며 나에게 인사를 한다. 크으~ 역시 딸라가 최고여! 딸라에 취한다!
첫 월급기념으로 팀원들과 회식을 하기로 했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위 팀원들 한테 추천을 받아 점심시간에 MGM에 있는 한 일식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다행이다... 한국이었으면 디너에 술도 같이 가는 건데 역시 외국은 런치지! 외국기업문화 만세! 개인주의 만만세! 내 지출 만만만세!
그런데 오늘가는 거기 스키야키가 맛있다는데... 난 어제 스키야키 먹었는데... 괜히 추천해달라고 했나?
흩날려라 스프레드 스시!
흘려버린 내월급을 줍줍!
다양한 종류의 회가 조각조각 흩날려 뿌려져 있는 스프레드 스시 덮밥이 나왔다. 깔끔한 상차림이 차려진 가운데 트레이 가장자리에 끝이 뾰족한 일본식 젓가락이 놓여 있는 것을 보니 이 음식점은 현지화를 할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런 도도한 녀석! 나는 현지인이 되기 위해 매일매일 광동어를 연습하는데.... 실력이 전혀 늘지 않는다...또르륵
일본어로 지라시스시(ちらし寿司)라고 불리는 이 음식은 지라시(흩뿌리다) + 스시(초밥)의 뜻이 합쳐진 음식인데 일본에서 먹었을 때는 예쁘게 깎인 연근이 올라가 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여기선 없어서 조금 아쉬웠다. 아삭아삭한 연근이 진짜 맛있는데ㅎ 하지만 여기서는 연근을 대신할 오이가 있다! 연어의 부드러움 문어의 쫄깃함 오이의 아삭함이 정해진 공식 없이 입에 흩뿌려지면 나는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처럼 입안에서 재료를 하나하나 줍고있다. 역시 나는 뼛속까지 개미인듯 하다...ㅎ
즐겁게 먹고 노는 동안 정산의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당당히 현금봉투를 들고 멋있게 계산을 하였다. 이까진 참 멋있었지...(약 스포)
회사로 돌아와 앞으로 계획적인 지출에 대해 엑셀파일로 정리했다. 그리고 알았다. 다음 달 월급날보다 월세 내는 날이 더 빠르다는 것을! 아...그러면 2달치 월세를 이번달에 내야겠구나...전세계에서 가장 월세가 비싸다는 마카오, 홍콩(스키야키편 참고) 흩날려라 월급아! 나는 내일 마이너스 통장 만들러 간다! 근데... 외국에도 마이너스 통장이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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